Summer Heart.
그는 추락에서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때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고, 이제 죽어간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사내는 빛나는 결정으로 꽉 들어찬 단단하고도 아름다운 바닥을 무심코 내려다보았다. 사내는 파랗게 물든 단풍이 그와 함께 떨어졌던 것을 기억했지만, 이제 그것은 검게 죽어 있었고, 지하의 바람이 손만 대면 재처럼 부스러졌다.
사내가 떨어진 곳은 탈비르였다. 그 검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사내는 마냥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하늘이라고 해 봤자 대부분 답답한 천장이었고, 거기 박혀 있는 빛은 아주 조그마했다. 그래서 사내는 그게 하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저 작은 똥구멍 같은 하늘이 하늘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사내는 생각했다. 배설물들이 떨어지는 거야. 나도 그렇게 떨어졌고, 다음에 떨어질 놈도 그렇게 되는 거지.
탈비르에 있는 것이라고는 사형당한 시체들과, 발을 헛디뎌 떨어진 시체들과, 스스로 뛰어든 시체들뿐이었다. 사내의 운명도 이렇게 음침한 구덩이에서 끝나버리는 것일까 싶었지만, 그래도 사내는 결국 나가는 길도 어딘가에 있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분명 그 길을 어떻게든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내는 무언가 꼭 쥐고 있던 오른손을 이제야 펴 보았다.
거기에 사내가 훔친 것이 있었다. 사내는 그래도 작지만 태양처럼 빛이 나는 여름 심장을 오른손에 가진 남자였다. 여름 심장을 가진 사람은 열정이 절대 식지 않았으며, 불같은 심성을 지니게 되고,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강인한 여름 손으로 바깥 세계까지 땅을 무작정 파서라도 언젠가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사내는 믿었다.
매일 실낱같은 빛 속에서 누워 노닥거리면서 사내는 종종 잠을 잤지만, 끊임없이 어둠 속을 돌아다니며 출구를 찾는 일도 쉬지 않고 했다. 그동안 시간이 흐르는 물처럼 개울의 돌출바위 같은 그의 주위로 스르륵 지나갔고, 벌써 몇 번이나 계절이 오고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내는 가을이면 좁은 하늘 아래로 낙엽들이 천천히 떨어지는 광경을 늘 볼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죽음의 세계는 검었고, 많은 것들이 살아가는 위쪽 세상에서 흘러드는 하얀 빛은 막 자라난 아기줄기처럼 미세했지만, 그 속에서 검은 낙엽들이 흩날리는 풍경을 아래에서 바라보고 있으려니 검은 눈이 내리는 것 같았고, 참 예뻤다.
그렇게 사내는 모든 일들을 여유롭게 해내고 있었고, 어떤 것도 불편하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사는 것이 아주 편안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가끔씩 심장이 아주 잠깐 동안 뛰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그러다가 다시 방금 전처럼 강렬하게 요동치며 되살아나는 것이었지만, 그건 불길한 징조임이 틀림없었다.
사내는 자신이 불멸을 쟁취한 남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싶어서 깊디깊은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사내는 생각했다.
에르헤게야에서 겨울이 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된 것일까? 백 년? 이백 년? 그보다 훨씬 더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그 원인을 사람들이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어떤 떠돌이 마법사가 마을 장로들의 요청으로 너무나도 혹독한 겨울을 전부 담아서 돌을 만들어냈고, 그걸 바닥이 보이지 않아서 영원히 떨어지는 줄 알았던 구덩이에 던져버렸다. 그래서 겨울은 그 안에서 영원히 갇히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마법사는 이제 겨울이 사라졌으니 그 다음으로 다가오는 여름에 세계가 불타버릴 것을 걱정해 여름을 전부 담아서 심장을 만들어냈고, 그러자 여름은 그 안에서 영원히 갇히게 되어버린 것이었지만, 어쨌든 두 강력한 계절이 일으킬 수 있는 끔찍한 재앙들을 봉인해둠으로써 세상을 더 살기 좋도록 만들어낸 것이었다. 마법사는 그렇게 조치하고는 다른 세계로 영영 떠나버렸다.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이 아주, 아주 많이 남아있다는 말을 남기고서는 말이다.
에르헤게야. 이제 봄과 가을만 존재하는 그 세계에서는 정말로 황금의 세기가 시작되었고, 누구나 완벽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풍족함에 불평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 시대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때에, 사람들에겐 나머지 계절을 담은 두 가지 물건들이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겨울 돌과 여름 심장이 혹시나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늘 관리하는 사람들을 계절을 담은 물건들 옆에 두었다. 이제 와서 마법이 깨어져버린다면 큰일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 세상에 거대한 재앙이 도래할 터였기에 항상 주시하고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다 멍청한 생각이었고 멍청한 짓이었던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탈비르(심연)라고 이름 지은 그 구덩이는 그렇게 영원히 겨울을 가둬둘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강력한 겨울은 그 까마득한 구덩이를 기어코 기어 올라왔다. 마치 죽음처럼 말이다. 그건 피할 수도 없었고, 결코 떨쳐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에르헤게야의 장로들은 다시 마법사들을 찾으려 했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세계로 가버린 자들을 다시 불러올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여름 심장도 죽음과 겨울을 상대로 결국 영원할 수는 없단 말인가? 사내는 생각했다. 사내는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이었다. 마법사와 장로들이 말했던 불멸은 죄다 거짓말이었다. 결국 겨울은 다시 오고야 말 것이다. 저 바깥의 세계에도, 사내의 여름 심장에도. 사내는 마침내 그걸 깨닫고는 이제는 잠을 자지 않고 탈비르의 암흑 속에서 기약 없이 굴을 파기 시작했다.
문득 카르카반이 사내를 밀어 넣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 사내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 자식은 그를 죽이려 했고, 여름 심장을 비겁하게 혼자 독차지하려 했으며, 사내를 영원히 어둠 속에서 썩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추락하기 직전까지 그는 카르카반이 빼앗을 수 없도록 간신히 여름 심장을 붙들고는 있어서 여태까지 아직 죽지도 않았고, 여름 심장을 빼앗기지도 않았던 것이지만, 어쨌거나 사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를 악물고 벽을 파냈다.
그래도 사내는 자신의 생명이 무한대에 가깝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버티고 있다가, 사내를 아는 장로들과 사람들이, 여름을 알던 사람들이 전부 죽어버릴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탈비르에서 뛰쳐나와서 다시 그가 태어났던 세상 속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처럼 아내를 두고, 아이를 낳고, 돈을 벌면서 평범하게 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사내는 하게 되었다.
솔직히 사내는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주위에는 오직 어둠과 빛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있긴 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던 것이다. 이미 에르헤게야를 겨울이 다 뒤덮고 그 종말이 찾아오고 말았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내가 원했던 삶은 살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혼자 남겨진 채로는 여름 심장이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단지 죽어가는 세계를 그저 바라보면서, 울고, 슬퍼하는 것이 다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사내는 더욱 필사적으로 팔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뒤를 돌아보아도 원래 사내가 처음 땅을 파기 시작했던 곳이 어디인지도 보이지 않았고, 아마도 사내는 그곳에서부터 아득히 멀리까지 왔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에르헤게야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마침내 손을 뻗자 그토록 염원하던 하늘에 닿았다. 햇살이 아직 따스한 것이 정말로 다행이라고 사내는 생각했다. 사내는 흙 속에서 기어 나와 태양을 마주보고 섰다. 죽어가는 세계의 계절은 바야흐로 가을이었다. 서늘한 공기와 따뜻한 햇볕이 사내를 기분 좋게 해주었고, 무엇보다 예전보다도 더욱 아름다워진 세상이 사내는 정말로 반가웠다.
그러나 이제 곧 겨울이 오면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었고, 세계는 그 직전에 다다라서 마지막 생명력을 쥐어짜내며 사내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그의 생애 가장 화려하고 경이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점점 단풍이 검게 변하고 그렇게 떨어지는 것이 간간히 보이긴 했던지라 그 처절한 몸부림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여름 심장을 매단 목걸이를 한 손으로 꼭 쥐고 사내는 걸었다. 아직 사람들이 남아있을 텐데 자신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사내는 능선을 따라서 높은 언덕들을 수십 번 올라섰고, 그러면 항상 바다 같은 새파란 숲이 지천에 펼쳐졌다. 사내는 그 속에서 마을을 찾았다. 마을이 없었기 때문에 사내는 계속 마을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몇 년쯤 헤매자니 지칠 만도 했지만, 밤이 되면 달이 비추는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힘들다는 생각이 싹 가셨기 때문에 그렇지만도 않았다. 거기다 사내에겐 아직 여름 심장이 죽지 않고 끈질기게 뛰고 있었기 때문에 사내는 다시 일어서서 마을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
사내는 세 갈래로 갈라지는 큰길에서 멈추었다. 사내가 어느 길로 갈지 고민하고 있던 중에 한쪽 길에서 작은 아이가 불쑥 튀어나왔고, 사내는 반가워서 아이를 한번 꼭 끌어안은 뒤에 조금 물러서서 물었다.
“마을로 가는 길을 아니?”
아이가 잠자코 있다가 사내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기에 사내는 아이를 따라갔다. 사내는 이제 사람들을 보겠구나, 싶어서 들뜬 마음에 아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댔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고, 질문을 할 때마다 사내를 멀뚱히 보며 계속 손짓만 하고는 홱 돌아서서 계속 갔다. 사내는 이놈이 낯을 가리는구나, 싶어서 속으로 키득거리며 더는 묻지 않았고, 곧 호수가 보였다.
아이는 제멋대로 떠났고, 사내는 물가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늦가을의 열매를 수확하고,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는 데 바빴으며, 누군가는 소리 높여 다른 자와 언쟁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보단 더 곱게 말을 나눴고, 또 누군가는 애정을 연료로 입을 서로 열렬하게 부딪히는 데에 바빴다. 거대한 마을이었고, 더 이상은 규모가 마을이 아닌지도 몰랐지만 사내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사내는 돌아왔으니 기쁘다고 생각했다.
장로들이 지금까지도 선출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내는 장로들이 익숙해서 편했다. 장로들이 아직도 있었기 때문에 사내는 장로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봄과 여름과 겨울을 아냐고 물어보았다. 장로들은 먼 산맥 너머의 죽어가는 추운 땅이라면 알고 있지만 반복되는 겨울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로들은 기록들이 거기에, 죽어가는 땅에 전부 남아 있으니 그곳으로 간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간다면 마법 때문에 죽을 테니 갈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또한, 봄도, 여름도, 그들은 전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들에겐 가을이 전부였다. 아주 오랫동안 그랬던 것 같았다. 하나의 계절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었을까? 수천 년? 만 년? 또는 그 이상일까? 사내는 떨리는 손으로 여름심장을 살짝 쥐어 보았다.
“바다로 나가 세상의 끝까지 항해하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아이들을 태울 생각입니다.”
사내가 다가오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장로들 중 하나가 그렇게 대답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방법 밖에는 없겠지. 사내는 여름심장을 다시 손에 쥐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그 여자는 사내가 힘이 넘쳐서 좋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잘 때에, 여자는 황홀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건강한 남자와 잘 수 있어서 자신은 정말로 축복받은 여자라고 말을 했다. 사내는 여자를 사랑했고, 함께 걷고 함께 식사를 하고, 별을 보면서 밤을 함께 보내길 좋아했다. 침대에서 사내는 여자에게 함께 집을 짓자고 말했다. 사내는 바다를 건너서, 겨울이 닿지 않는 땅으로 간 뒤에 그곳에서 함께 살자고 말을 했다. 여자는 재미있어 하며 그 마법에 닿지 않는 사람은 없고, 결코 피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여자는 사내를 위해 아기를 낳아주겠다고 말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그만 여자가 조금 놀랐을 정도로 힘껏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집은 호수에서 머지않은 곳에 자리 잡은 신비로운 정원 같은 장소에 지어졌다. 사내와 여자는 그토록 사랑했던 단풍나무와 알이 무겁고 꽉 찬 질 좋은 가을무와 두 갈래의 귀여운 그루터기 뿔에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면서 예쁜 눈을 빛내는 연못사슴을 키우며 살았고, 아이도 셋이나 있었다.
하지만 탈비르의 입구에서 기어 나온 겨울이 세상을 점점 뒤덮고 있었고, 이제 에르헤게야는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검은 낙엽이 여기까지 다다른 것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고, 옷을 두껍게 입지 않으면, 이불을 꼭 덮고 자지 않으면 늘 감기가 걸렸다.
사람들이 타고 갈 방주는 아직도 멀리 있는 만에서 한창 건조되고 있었다. 사내는 자주 그곳에 가서 방주가 얼마나 공사되고 있는지 알아보았고, 그럴 때마다 점점 견고해지고 계속 나무판자와 쇠못들이 선체에 덧붙여져서 새로워진 방주들의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내는 일꾼들 중 하나에게 다가가 말을 붙여보기로 했다. 사내는 하얗고 때가 탄 헐렁한 작업복을 입고 망치로 두들기는 중인 사람에게 가서 수통을 건넸다.
“저 바다의 끝에만 다다르면 더 이상 겨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겨울이요? 죽어가는 땅 말이오? 그쪽이 그 여름 남자라는 사람이구먼? 죽어가는 땅을 겨울이라고 부른다던데, 정말 그렇군. 절대 그렇지는 않을 거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물 위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소? 바다도 결국엔 죽을 테지요. 그 너머도 어차피 똑같을 거고.”
“그런데 왜 계속 일을 하는 겁니까?”
“내 아들이 불쌍해서이기도 하고, 뭐,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할 일도 딱히 없어서 말이오.”
수통을 다시 받아든 사내는 여름 심장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이라도 세상에 돌려준다면 어쩌면 봄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고, 아주 오랫동안은 사람들이 추위를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사내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내겐 아직 여자와 아이가 있어. 사내는 생각했다. 가족을 두고 혼자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지. 게다가 사람들은 내가 여름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도 않잖아. 사내는 생각했다.
...
“그 목걸이는 나도 한번 걸어보고 싶네요.” 침대에서 여자가 사내의 목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건 안 돼.”
“대체 왜요? 이걸 왜 그렇게 아끼는 건지 전부터 궁금했어요.”
“중요한 거니까.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
여자는 잠깐 삐쳤지만, 금방 웃으며 사내를 쳐다보았고, 사내는 여자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여자의 입에 입술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집중했고, 그러다 여자가 갑자기 사내의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가볍게 밀어냈기에 사내는 멈췄다.
“당신이 바깥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고 들었죠. 당신도 물론 내게 그걸 말해줬지만, 당신이 나를 만나기 이전엔 어땠는지는 아니었죠. 정말 궁금해요. 그동안 당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정말 궁금해요. 다른 마을에서 살았었나요? 아니면 숲 속에서 혼자? 혹시 섬에서 온 건 아니죠? 어째서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거에요?”
“아……. 그만둬, 내가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하기엔 너무나도 달콤한 상황이잖아.” 사내가 웃으며 여자를 안았고, 여자는 부드럽게 밀쳐져서 시트에 등이 완전히 닿았다.
하지만 여자는 다시 사내를 밀어내며 말했다. “오늘은 그만, 이제 겨울이 머지않았잖아요.”
“당신은 죄를 지었다고 했어요.” 여자는 사내의 눈을 보고 말했다.
“맞아.” 사내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 나는 여기에 있잖아.”
“아니요. 저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전부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더 이상 고민 따위는 하지 말고요. 날 사랑하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거잖아요. 그걸 당신이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럴 수는 없어.”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죽어가고 있다고요. 제발.” 여자는 호소했고, 사내는 여자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는 거라면, 사내는 그 일을 해야만 하리라.
...
파란 단풍나무들이 죽었다. 사내는 돌아갔고, 탈비르로 돌아가서 자신의 심장을 겨울 돌에 대고 내리쳤다. 여름이 산산이 조각났고, 어둠이 잠깐 환해졌고, 겨울이 멈췄다. 태양과 달이 여전히 하늘에서 빛났고, 사람들도 그걸 알았지만, 보이기 때문에 아는 게 다였다. 마법사는 이제 없었고, 마법도 더는 없었고, 겨울은 여전히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제 가을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을 알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달렸고, 아마도 시간이 끝날 때까지 언제까지나 그렇게 계속 달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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